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을 기념하는 법정기념일
4월 19일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상 큰 획을 그은 날입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화 운동입이죠.
이 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자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중항쟁으로서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는 결코 쉽게 얻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부정과 억압에 맞서 피를 흘리며 쟁취해 낸 것입니다.
그 시작은 1960년 4월 19일 4·19 혁명
당시 이승만은 헌법을 제멋대로 개정해 대통령을 3회째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 선거에도 출마의 독재를 이어가려 했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일어났습니다.
마산에서 참관인이 투표함을 엎어버렸는데 그 투표함에서 미리 기표해 둔 용지가 쏟아지면서 부정선거가 적발되었죠.
이에 마산에서 3000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는데 그때 경찰의 총기 발포에 의해 사망자가 생겼습니다.
3·15 마산시위 당시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오른쪽 눈에서 뒤통수까지 관통당한 모습으로 마산 신포동 바다 위에서 김주열 학생이 발견된 것입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시청 쓰레기 청소차에 실려 도립마산 병원으로 옮겨지자 수많은 시민들이 주검을 목격하고 분노하였습니다.
시위대는 자유당과 관련 있는 인사의 집과 건물을 마구 부숴나갔다.
이에 경찰에게 카빈 소총이 지급되었고 시위대와 경찰 간의 무력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비보
3월 18일 고려대생들이 깡패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청계천 4가를 지나던 시위대를 100여 명의 괴한이 뛰어나와 습격한 것입니다.
학생 200여 명이 괴한들이 휘두른 쇠망치와, 몽둥이로, 벽돌 등의 흉기로 쓰러졌습니다.
서울 지역 최초로 대학생이 참여한 날.. 학생들이 도로 위에 쓰러져 있는 사진은 사람들을 분노케 시위는 더욱 확산됐습니다.
고려대학생 피습 사건은 4월 18일에 학생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부정선거 규탄에서 정권타도 독재타도로 전환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4월 19일 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이승만의 집무실인 경무대와 이기붕의 자택으로 몰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수년간 그 공포를 경험하고도 어째서 이들은 이토록 용감할 수 있었는가
서울 시내 곳곳에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186명의 시민이 사망했고 600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4월 26일 압박을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했고 그의 동상은 내려졌습니다.
이는 한국사 처음으로 국민이 봉기하여 정권을 쓰러뜨린 사건이었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보여준 사건
419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첫 승리이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우리가 알게 된 사건입니다.
왜 하필 4월 19 혁명인가?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
즉 1919년 3.1 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의미로서 4월 19일을 지정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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